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20세기 제약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저자 노르만 올라 출간 열린책 출간 2022.12.25.

인간의 의식을 완전히 바꾸는 약물이 독일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까지 간과되어 온 것은 그런 약물에 대한 국가 통제를 확립하는 일반적으로 마약을 금지한 국가 사회주의의 표면적인 “마약 퇴치”정책 때문이다.이런 이미지에 의해서 마약은 학계와 경제계, 대중적 의식, 역사적 고찰의 냉철한 시선에서 벗어나고 암흑 경제와 중독 범죄, 어설픈 지식 같은 어두운 구석에 밀려났다.우리는 이를 바로잡고 실제 사건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시도할 수 있다.고증에 유의하고 구조적 관련성을 밝히며 역사적 실체와 나치의 잔혹성을 숨길 웅대한 테제 대신, 세세한 부분까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해석이다.국민의 마약, 타민(1933~1938)국가 사회주의는 문자 그대로 독극물이다.그들은 오늘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화학 물질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긴.나치는 스스로 깨끗한 사람 행세를 하면서 거창한 선전과 가혹한 처벌을 내세우며 자신의 이념에 근거한 엄격한 반 마약 정책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 치하에선 정말 강하고 중독성 강한 독인 물질이 인기 상품이 됐다.이 물질은 1930년대”페루비칭”라는 이름의 알약으로 제2제국 사회 곳 곳에 나중에는 독일이 점령한 유럽 국가에서도 합법적으로 퍼졌다.이”국민 마약”는 1939년에야 의사의 처방전이 없다고 사지 못하게 바뀌어 1941년에 마침내 제국 마약 법으로 규제되었다.페루비칭의 주성분인 메스 암페타민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위법 또는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이지만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독극물의 하나로 1억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용하면서 그것도 증가 추세다.이 흥분제는 파티용이나 직장 사무실, 의회, 대학에서 업무 능력을 높이는 용도로 사용된다.이를 복용하면 수면과 허기가 사라지고 극도의 희열감이 밀려들.이 약은 인간을 잠재적으로 파괴하고 건강을 해치고 급속으로 중독 상태에 빠뜨린다.이런 약물이 제3제국 시대에 날개를 달고 비상한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치군의 진격 뒤에는 메스암페타민이 있었다

19세기의 전주곡-마약의 근원 자발적 종속은 가장 아름다운 상태이다-괴테 경제가 기술 발전과 연결되어 있듯이 현대 사회의 발전사도 마약의 기원 및 유통의 역사와 이어지고 있다.출발점은 괴테이다.그는 1805년”파우스트”를 쓰고 거기에서 인간의 기원이 약물에 의하여 유발된다는 테제를 문학적으로 표현했다.① 이 시기, 약제사 조수의 젤 튀르크는 양귀비에서 실험을 하고 있었다.양귀비의 즙인 아편은 통증을 마비시키는 탁월한 효과가 있었지만 천차 만별의 양귀비의 작용 물질 농도를 해결할 문제였다.그는 마침내 아편의 핵심 성분인 모르핀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다.② 이 물질은 고통을 쾌락으로 바꾸바로 마법의 약리학적 메피스토이었다.모르핀의 분리 추출은 19세기 초, 인류 역사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의 하나였다.인간의 생활의 비참한 고통은 정확한 양의 모르핀 투여에서 해결되었다.그것과 함께 모르핀은 통증 완화의 기능을 넘어 메이저 벌이의 수단이 됐다.③ 엥겔 약국 주인인 머크(Merck)는 이런 발전의 선구자로서 1827년 알칼로이드나 다른 의약 약품을 동일 품질로 제공하는 기업 이념을 모토로, 독일 제약 산업의 시작을 알렸다.④ 1850년경, 주사기가 발명되자 모르핀은 더 기세를 탄다.1861-65미국 남북 전쟁, 1870-71독. 불 전쟁에서 대량으로 사용되고 모르핀은 곧 일상이 됐다.모르핀은 좋은 편인 나쁜 편인 인간 사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사람의 고통도 통제하고 대규모 전쟁도 가능했다.

모르핀 주사

⑤ 모르핀은 만병 통치 약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와 귀족을 불문하고 전 계층에 만연하고 유럽, 아시아, 미국까지 전 세계를 석권했다.당시 미국의 약국에서는 2종류의 물질이 처방전 없이 팔았지만 모르핀과 코카인이었다.모르핀이 포함된 주스는 진정 작용에 코카인이 포함된 혼합 음료(코카 콜라)는 우울증 및 쾌락적 도취, 국소 마취용으로 사용됐다.⑥ drugstore영어로 약국이 마약 drug을 파는 상점이라는 의미였다 ⑦ 1885년경 미국 약사 존·뼁바톤은 코카인과 카페인을 섞어 코카 콜라라는 이름의 청량 음료를 만들어 팔았지만 곧 만병 통치 약으로 선전됬다.1930년까지, 오리지널 코카 콜라에는 1리터당 최대 250mg의 코카인이 들어 있었다.

코카콜라.

⑧ 1897년 바이엘사의 화학자 호프만은 버드나무 껍질의 진통 효과가 있는 물질을 섞어 ‘아세틸살리실산’을 만들었고, 이를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해 세계를 장악했다.아스피린.⑨ 또 11일 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또 하나의 물질을 발명했는데 처음의 합성 마약에 해당하는 모르핀 유도체 디아세틸 모르핀이었다.이 물질은 “헤로인”라는 브랜드 출시된 위풍 당당히 승리의 진군을 한다.”헤로인은 아름다운 사업입니다”바이엘 경영진이 자랑으로 밝힌 말이다.헤로인 바이엘사헤로인 바이엘사페르비틴⑥ 이 약을 먹으면 이삿짐을 더 찾아 소방관은 불을 더 빨리 끄고 미용사는 더 빨리 머리를 끄고, 점심 시간 후에 잠도 없이 모두가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성욕은 강해지고, 의욕은 증가했다.모두 인위적으로.⑦ 또 암컷 암페타민을 넣은 프라 린(초콜릿 땅콩 과자)까지 발매된 과자 한개에 포함된 암페타민은 14mg으로 페루비칭의 알약 5배에 이르렀다.과자 광고를 보면 과자를 먹으면 집안 일이 더욱 쉬워지고 마르다고 말했다.프랄린 과자 광고이 약물의 새로운 장점은 속속 발견되면서 부작용은 뒷전으로 밀려났다.이로써 후에루비칭은 독일 민족을 거대한 집단적 도취와 자기 치유의 선전에 쉽게 만든 길을 열었다.사람들은 선전과 약리 물질로 구성된 이 재앙의 도취 칵테일에 더욱 더 의존하게 됐다.헬 루비 징은 개인이 독재 체제의 부품처럼 기능할 수 있게 하였다.”알약”으로 돌아가국가 사회 주의였다.전격전은 암컷·아후에타밍 전쟁이다(1939-1941)”가끔 음악을 정말 큰 위로가 됩니다., 그래, 후에리비칭을 보내는 것을 잊지 마세요, 비상 사태가 되자 그 놀라운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하인리히·보일”이 전선에서 집에 쓴 편지이다.후일, 노벨 문학 상을 수상한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 암컷 암페타민의 놀라운 효과를 포기하지 못 했다.수십, 수백만의 독일군이 전쟁 중에 타민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증거 수집-프라이부르크 군사 기록물 보관소의 곡물에서 두뇌의 음식으로 제3제국 시대의 대표적인 국방 심리학자 랑케는 주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것은 러시아 영국 프랑스도 아니고 바로 피로였다.잠든 군인은 무기력이다만 아니라 위험이기도 하다.그 시간에 적은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랑케는 단도 직입적으로 말했다”전투 당일 긴장 완화는 전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전쟁의 최후 15분을 잘 견디는 쪽이 승리한다.”랑케는 1938년 페루비칭이 호흡량을 20% 늘리고 산소 흡수를 증가시킨다는 주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그는 뇌를 집중 공격하는 합성 알칼로이드는 군인에 필수품으로 보급할 계획을 세웠다.이 각성제의 효과는 젊은 의무 장교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그들은 성적 향상을 위해서 점점 많은 양을 복용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여러 부작용이 밝혀졌다.런 손은 1939년 곧바로 페루비칭에 대한 실험을 취소하고 군에 공급할 계획을 취소하라고 했지만 이미 너무 널리 퍼지고 말았다.1939년 9월 하루, 폴란드 침공이 임박하고, 의무 장교들은 시내 약국을 모두 찾아 페루비칭을 확보했다.각성제 복용에 대한 어떤 지침 없이 대대적으로 약에 취한 군인들은 무방비 상태의 동부 인근 국가를 순식간에 밀어넣었다.헬 루비 징 효능 ① 각성제를 복용한 군인의 증언은 “정신적으로 고무되어 의욕이 넘친다.사고는 없다.효과 지속 시간은 길다.또 즐거운 느낌의 가벼운 환각이 승리감에 도취된 병사들에게 나중에는 폴란드의 잔인한 나치 범죄를 가능한 “② 마약은 많은 사람에게 전장의 이상적인 동반자였다.공포, 소심증 같은 감정을 무장 해제시키고 전투를 쉽게 이끄는 동력이었다.③ 중독은 군대 밖에도 만연하고 있었다.1939년 제3제국에서 후에루비칭의 소비는 확실히 바람이었다.폐경기의 주부들,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 어머니들은 수유 전에 암컷 암페타민을 삼키고 일상에서 불편을 느끼는 어떤 일이라도 후에루비칭을 찾기가 더욱 일상이 됐다.④ 1939년 가을 독일 보건부의 콘티 장관은 마약 중독의 위험성을 공표하고 우려를 표명했다그리고 처방전 의무 약품으로 지정했다.그러나 군에서 이런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⑤ 4월 15일 국방 심리학자의 랑케는 아르덴 진격을 지휘하는 군단 의무관에서 편지를 받아 후에루비칭의 각성 효과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수면 격파를 위해서 각성제를 써도 될까”로 한다.페루비칭은 체계적으로 의료 기기에 포함되었다.⑥ 독일군은 화학 약품에 의존한 세계 최초의 군대로 이 약품의 공식 투입을 설계한 것은 페리비칭 중독의 국방 심리학자 랑케이었다.⑦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민족주의적 열정이 전쟁의 열정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마약이 독일군에 그런 감격과 흥분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 ⑧ 병사들은 약물에 의존하면서 점점 많은 군인들이 약물의 소모성 부작용으로 의욕 상실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그들은 약효가 떨어지면 불안하고 기분이 나빠졌다.페리비칭의 복용 기간이 길수록 뇌에서 방출되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양은 줄어들어 기분이 악화되면서 이럴수록 이 상태를 개선하려고 점점 많은 약을 찾았다.중독의 악순환이었다.하이·히틀러-환자 A와 주치의(1941-1944)1941년 8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주치의는 거의 매일같이 환자 A을 치료했다.1349일 중 총 885일의 기록이 남아 있다.약물은 1000회 기재하고, 또한 800회 미만의 주사가 추가된다.그렇다면 기록된 날에 하루 1회꼴로 주사를 받았다는 사실이다.모렐은 게슈타프을 두려워했다.총통의 주치의와 지위가 얼마나 위험인지 잘 알고 있었다.히틀러의 늑대 요새히틀러의 늑대 요새오른쪽 약물 중독의 모습스피드 볼의 히틀러는 알코올을 제외하고 모든 마약을 잘 받아들였다.특정 약물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을 기분 좋게 인위적인 현실에 보내는 모든 물질에 의존했다.이래서 그는 단기간에 열심인 코카인의 사용자가 됐다.1944년 10월 중순부터는 이 약물을 버리고 또 다른 자극제에 눈을 돌렸다.히틀러는 이 당시의 상황을 영웅적 허세에서 포장했다.”7월 20일 이후 몇주 동안은 내 인생에서 최악이었다, 강철 같은 에너지와 나의 의지로 버텼다”라고 했지만 강철 같은 에너지와 의지는 코카인과 오이코달(마약)이었다.히틀러의 피 속에 흐르는 마약 칵테일, 즉 코카인과 오이 코다ー루의 혼합 마약은 암살 후 몇주에 걸쳐서 전형적인 스피드 볼에 변형한 자기 붕괴(오이코달 복용)히틀러는 1941년 가을부터 호르몬 주사와 스테로이드를 투여 받고 늦어도 1944년 후반부터는 처음에는 코카인을 나중에는 오이코달을 집중적으로 투여됐다.단 하루도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간 날이 없었다.약물은 히틀러가 자신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악몽 속에서 깨지 않도록 끝까지 버티는 힘이었다.그래서 현실과의 균열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더 이상 아무것도 채우지 못 했다.오이 코다ー루 효과가 떨어지면 금방 몸의 떨림이 시작됐다.1944년의 마지막 몇주 동안은 증상이 악화했다.떨림은 더 심해지고 굳은 팔을 위로 뻗쳤던 나치식 인사도 이젠 옛 말이 됐다.히틀러는 이를 감추려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깊이 넣었다.어떤 때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기도 했다.암살 사건 후 히틀러의 마약 소비는 매일 신기록을 세웠고 마침내 몸의 생화학적 불균형이 생기고 건강이 무너졌다.사실은 주범은 오이코달이다.오리코 그는 행복감의 대사로 불쾌한 부작용을 내게 했지만, 수면 장애, 몸 떨림, 변비 하지만 히틀러는 이런 증상을 모두 거쳤다.아편 중독은 기존의 강경 노선과 남에게 대리 위임한 잔혹한 폭력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전쟁과 유대인 학살의 마지막 국면에서는 결코 의지를 굽히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했다.그는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 있는 정신적 상태를 유지하려고 그토록 많은 뭐 지역을 직접 복용한 것이다.천하의 죄악이 경감될 수는 없다.마지막”탐닉-피와 마약”(1944-1945)1944년 하반기, 히틀러의 병사들에게 더 이상 승리는 없었다.8월 말, 파리는 연합군에 함락됐고 8월 23일 독일군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남동부 유럽 전역에서 퇴각했다.9월 11일 미군은 토리아부터 제국 국경을 넘었다.모든 면에서 밀린 독일은 이미 패배를 앞두고 있다.헬 루비 징은 지금은 버티고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1944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끝까지 버텨야 할 시간이 있었다면 마지막 4분의 1의 시기였다.마지막 작전을 수행하는 병사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 신속하게 먹을 수 있는 약을 열렬하게 개발했다.해군 참모부는 소형 혼자용 잠수 인간 어뢰를 개발하고 조종사에 제공하는 마약을 제조했지만 오이코달 5mg, 코카인 5mg, 암컷 암페타민 3mg으로 D1X를 만들었다.강성 마약으로 임무 수행이 가능했다-1인용 인간 어뢰, 네거그러나 기적의 약은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인간 어뢰 조종사 3분의 2가 임무에서 살아남지 않았다.작센 하우젠 강제 수용소가 1936년 올림픽 기간에 오픈했다.수용소의 존속 기간 중 40여개국의 20명 이상이 여기에 투옥됐다.정치적 반대자,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점령지의 유럽인, 알코올/마약 중독자 등.이 수용소의 또 하나의 추한 면은 이른바”구두 시험 워킹 부대”이었다.구두 업체의 최신품을 죄수들에게 테스트하는 것이다.죄수들은 하루 40킬로 이상 걸어야 했다.트럭은 700m의 길이였으나, 58%는 콘크리트, 10%는 광석 부스러기, 4%는 쇄석, 4%는 자갈, 8%는 점토, 4%는 포석으로 구성되어 있다.걷다가 넘어진 사람은 하루 최대 20여명이었다.ALYac정찰대의 구두 시험 워킹 부대는 고용량의 마약을 복용한 뒤 걷기 테스트를 실시했다.문자 그대로 밤을 새운 행군이었다.그들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다.이른바”ALYac정찰대”이다.대부분은 24시간 후에 포기하고 쓰러졌다.지금 독일인에 이러한 알약이 꼭 필요한 모양이다.껌의 형태로 제공되는 마약은 20mg의 코카인 소금과 코카인 염기이다.마지막 고통 1944년부터 1945년 들어 연합군의 공습이 강화되고 베를린 시내 주요 시설은 공급되고 히틀러가 필요한 약물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히틀러는 심한 금단 현상 때문에 옆에서 보면 딱할 정도로 숨을 헐떡거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안에 몸을 떨었다.체중이 줄어 순환계와 마찬가지로 신장 기능도 마비됐다.정상적인 집중이 거의 불가능했다.히틀러를 괴롭혔던 것은 전쟁 패배가 아니라 세포 하나까지 온몸으로 터야 하며 자살의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던 육체의 고통이었다.마지막의 독소, 1945년 4월 27일 히틀러는 충성스러운 부하에게 청산가리를 돌렸다.괴벨스의 부인 마크다는 아이 6명에 청산가리 캡슐 6개를 썼다.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급히 간 애인 에바·브라운과 급히 결혼식을 올렸다.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로 마지막 식사를 즐기고 후식으로 시안화 수소 갭 슈루를 삼킨 뒤, 발터 6.35㎜구경 권총으로 머리를 쏘았다.환자 A는 현실 억압 시스템에서 파멸했다.마약으로 독성 물질의 칵테일에 지치고, 세계를 피려는 애초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황당한 꿈에 취하고 현실 도피와 세계 고통의 나라였다 독일은 슈퍼 마약 중독자를 찾아 가장 암울한 시기에 히틀러는 그러한 인물을 찾았다.그의 몰락, 히틀러의 사후 제국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의 자살이 잇따랐다.약 10만명 정도다.1945년 5월 8일 독일군은 항복한다.모렐은 미군 포로로 2년 가까이 생활한 뒤 석방되어 곧 사망한다.1948년 5월 천년의 도취 히틀러와 제3제국의 진면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은 1944년 7월 20일 암살 사건 이후 다중 독극물 중독에 빠진 몇개월의 자멸 기간이다.우리의 시선을 역사 인물에서 시대적 구조로 바꾸려는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한 인물의 의지와 힘이 얼마나 강한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생각한다.무수한 인간 생활에 영향을 준 운명과 사회 현실은 1941년 가을부터 히틀러의 혈관에 들어 내면에서 그에게 영향을 미친 약물이다.그는 주사 바늘과 여러가지 끈에 매달린 인형이었다.히틀러는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도 현대적인 화학 시대의 희생양이 됐다.겉으로는 “마약 퇴치”이라는 모순된 정책을 펼쳤지만이다.우리는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가 중독성 물질을 너무 많이 복용했기 때문에 탈선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마약은 우리와 우리 시대에 이미 내재했던 것을 강화했을 뿐이다.이 책은 바람직한 현실과의 인연을 잃은 채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가져온 제삼 제국의 일그러진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책의 최대의 공로는 히틀러와 주치의 모렐의 공생 관계에 대한 묘사이다.확실히 혁명적이다.1941년 가을 이후의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히틀러가 개인적 능력을 상실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흥미로운 아찔하다.군사적, 경제적 현실을 외면한 정상부의 무능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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